데시벨 줄거리
괌 근해에서 군사훈련을 종료하고 복귀하는 잠수함을 향해 어뢰가 한 발 발사됩니다. 지휘관인 강도영 부장(중령)의 지휘로 잠수함은 가까스로 어뢰를 피하지만 장애물에 부딪히고 맙니다. 강도영은 충격에 의해 고장 나버린 잠수함에서 구조되어 살아 돌아왔고 국가적 영웅으로 대우받으며 강연 무대 등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습니다.
강도영에게 테러범의 전화가 걸려와 폭탄을 설치했다고 말합니다. 설치된 폭탄에는 소리의 크기(데시벨)에 따라 폭발까지 남아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장치가 되어 있었습니다. 김유택 소령의 집에서 폭탄이 터지고, 테러범은 강도영에게 다른 폭탄이 설치된 장소를 알려주며 강도영의 숨통을 점점 조여갑니다.
많은 인파가 몰려있는 워터파크 수영장과 도심 속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는 또 다른 폭탄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강도영의 아내이자 폭탄처리반인 장유정 상사는 놀이터에 설치된 폭탄을 해체하러 가게 되고, 테러범은 강도영에게 어려운 선택을 강요합니다. 수영장으로 갈 것인가 놀이터로 갈 것인가. 테러범은 강도영에게 누구를 구할 것인지 선택하는 문제를 계속 던집니다. 테러범은 아내를 구할 것인지 딸(설영)을 구할 것인지 강도영을 계속해서 딜레마의 상황에 빠뜨립니다.
잠수함 사고가 났을 당시 구조가 될 때까지 필요한 산소량이 부족했기에 강도영은 선택을 해야만 했습니다. 남아있는 산소량을 생각했을 때 일부라도 살아서 구조되려면 선원 절반의 희생이 필요했습니다. 모두가 구조를 기다리며 버틸지, 절반의 선원이 희생하여 일부라도 살아서 돌아갈지 선택의 기로에서 캐스팅 보트를 가진 강도영은 일부라도 살아서 돌아가는 선택지를 택합니다. 제비 뽑기를 통해 희생될 사람을 정하기로 했고, 테러범인 정태석은 자신의 동생 정태룡이 희생자로 결정된 것에 대한 분노로 강도영을 탓합니다.
자신의 친동생을 잃어버린 테러범 정태석은 살아 돌아온 강도영이 영웅으로 대우받는 것에 대해서 더욱 분노했습니다. 자신의 가족을 잃어버린 슬픔에 테러범이 되었고 그런 상황에서 지휘관이었던 강도영에게 가족을 잃는 고통과 선택에 대한 죄책감을 심어 주고자 마지막까지 아내와 딸 중 누구를 구할지 선택을 강요합니다.
데시벨 제작진 출연진
영화 데시벨은 2011년 영화 오싹한 연애로 데뷔한 황인호 감독이 제작에 참여했습니다. 불후의 명작 해바라기의 김래원 배우가 강도영 역을 맡아 열연했습니다. 김래원은 자동차 추격전 등 액션신을 CG나 대역 없이 소화해 내면서 한층 성장한 액션연기를 보여주며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종석은 테러범 전태성역을 맡아 김래원과의 대결을 멋지게 소화했습니다. 아스트로의 차은우도 테러범 정태석의 친동생 정태룡 역을 맡아 특별출연했습니다. 뮤지컬배우 정상훈은 오대오 역을 맡아 강동영의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연기했고, 영화배우 이상희는 장유정 역을 맡았습니다.
데시벨 후기
유실어뢰에 공격을 당한다? 어뢰를 잃어버릴 수도 있는 건가 의아했지만, 2014년 9월 해수욕장을 청소하던 민간인이 유실어뢰를 발견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발견자의 신고로 군부대가 회수해 갔다고 합니다. 국내 어느 방산기업이 해군으로부터 빌려 잠수함 시험훈련에 사용하다 분실됐던 어뢰라고 하는데, 탄피 하나 잃어버려도 훈련을 멈추고 찾느라 난리가 난다고 하는데 어뢰를 분실했다니 머리가 어질어질합니다.
영화 데시벨에서 군 관계자들은 유실된 어뢰에 의해 사고가 나서 군인들이 사망한 사건을 덮어버리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회사에서도 자신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는 사람이 참 많죠. 강도영은 그날의 진실을 밝히고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며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리더의 보습을 보여줍니다.
영화 데시벨에서 큰 소리에 반응하여 시간이 줄어드는 시한폭탄이라는 장치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산소가 부족해서 죽음이 점점 다가오는 것과 시간이 점점 줄어들어 결국 폭발하는 장치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에 반응하게 되면 시간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과 잠수함에서 선원 절반이 희생당한 것과도 연관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시간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시한폭탄이라는 장치를 통해서 고장 난 잠수함에서 구조를 기다리며 살아남기 위해 침묵해야만 했었던 상황을 끌고 오려고 합니다. 테러범 정태석은 살아서 육지로 돌아온 강도영을 딜레마 상황에 갇혀버린 깊은 물속 그날의 잠수함 안으로 다시 끌고 들어가는 것이죠.
우린 지금 물속에 있다고요. 모르겠어요?
영화 데시벨에서 강도영과 정태석의 모습을 보면 공리주의의 맹점을 비판하는 트롤리 딜레마(Trolley dilemma)가 떠오릅니다. 과연 정의란 무엇일까요. 모두가 살 수 없는 상황에서 합리적인 선택은 일부라도 살아남는 것이겠지만, 그 희생자가 나 또는 나의 가족이라면 그 당사자에게 합리적일 수 있을까요? 그리고 다수결의 원칙은 항상 옳은가에 대한 질문도 하게 됩니다. 셋 중에 한 명이 죽어야만 한다면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다른 둘이 동의하니 당신이 죽으시오라고 하는 것이 타당한 결론일까요? 우리가 평소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던 기준이나 원칙들은 우리 사회를 원만하게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기보다는 차악의 방법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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